석굴암 1/5 모형은 8세기 중엽 당시 신라재상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석굴암이 세상에 알려진것은 1907년 일본인 우체부...
신라의 역법은 중국 역법의 도입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역서가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5세기 이후 백제에서 원가력을 시행하였고 6세기 중엽에는 일본의 요청에 의하여 역박사를 보냈으며, 604년부터 일본에서도 원가력을 썼으니까 신라에서도 6세기에는 원가력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문무왕 14년(674)에 당나라의 인덕력을 전습하여 개력 하였다고 하니, 이때부터는 인덕력을 썼음이 확인된다. 그 후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선명력으로 개력하여 그것이 고려에 계승되었다. 이렇게 신라의 역법은 중국의 역법을 따랐고, 이에 따라 시각제도도 중국을 따르고 있다.

시간의 측정은 해시계와 물시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국립경주박물관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원반형 해시계 모양의 파편이 있다. 반경 약 33.4cm, 최대 두께 16.8cm의 이 해시계 모양의 원반은 자시에서 묘시까지의 부분이 남아 있는데, 6~7세기경에 제작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해시계로, 다른 하나는 회전시키는 방위판으로 쓰여 졌으리라 생각된다.



원을 24등분하여 24향의 24자가 새겨진 원반의 중심에서 시표의 막대기를 세울 수 있게 했고, 원반 아래 부분에는 그것을 회전시킨 듯한 흔적이 있어 회전 방위반으로도 쓰였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한대이후 원대 이전의 중극의 전통적 해시계와 그 형식에서 뚜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