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1/5 모형은 8세기 중엽 당시 신라재상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석굴암이 세상에 알려진것은 1907년 일본인 우체부...


조선시대에 사용하였던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명을 가진 민족이라면 시간을 측정하는 수단으로서 해시계를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문헌이나 유물을 보면 여러가지로 그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형태도 다양하다.

그러나 해시계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보는 방법 즉 사용할 줄 알아야 했고, 또 가질만한 신분이어야 했다. 따라서 해시계는 귀한 물건으로서 취급되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생각끝에 백성들을 위해 해시계를 만들게 되었다. 서기 1434년인 세종 16년 10월 초 2일의 실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모든 시설에 시각보다 큰 것이 없는데, 밤에는 물시계가 있으나,
낮에는 알기 어렵다, 구리로 만들었으니 그 모양이 가마솥 같고....
(서울 장안의 혜정교와 종묘 앞) 길가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백성들이 만들 줄을 알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앙부일구라는 해시계가 제작된 것이다. 그 후, 세종 19년에는 다른 종류의 해시계도 만들었지만, 이 앙부일구만큼 백성들의 사랑을 받고 널리 애용되지는 못했다. 앙부일구는 궁궐안의 곳곳은 말할 필요도 없고, 거리에도, 13도에 있는 관가에, 그리고 지방 군영에 널리 설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도 돌, 나무, 자기, 심지어는 상아로 만들어서 집에서나 여행중에 가지고 다니면서 널이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에 전시된 앙부일구는 보물 제845호로 지정받아 현재 서울에 있는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선명문화재 연구소가 복원 제작한 것이다. 이 앙부일구의 지름은 35.4cm이며, 구리를 부어서 만들고 검게 표면 처리하였다. 둥근 그릇은 4개의 기둥으로 받혀져 있고, 이 기둥들은 심자로 된 받침대 위에 박혀 있느데, 이 십자로 되어 있는 받침대에는 홈이 패여 있다.

이 홈은 그 속에 물을 담게 되어 있느데, 그 이유는 아부일구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반구의 모양을 한 그릇의 안쪽에 해의 그림자를 만드는 영침이 하늘의 북극을 향해 꽃혀 있고, 그림자의 위치로 일년의 절기와 하루의 시각을 재 수 있는 흰 눈금이 그어져 있어서 계절은 1내지 2일 정도로 그리고 시각은 1분 정도로 정확하게 측정된다.

앙부일구의 둘레에는 24방위와 24절기가 적혀 있고, 한양에서의 북극의 높이가 37도 20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앙부일구에 새겨져 있는 불과 글씨는 모두 은으로 상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