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1/5 모형은 8세기 중엽 당시 신라재상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석굴암이 세상에 알려진것은 1907년 일본인 우체부...
서기 828년(통일신라시대)에 청해진 대사(淸海鎭 大使) 장보고 장군(張保皐 將軍)은 전라남도(全羅南道)완도(莞島)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고, 우리나라의 황해(黃海)와 남해(南海)에 창궐하던 해적들을 물리치고 신라(新羅) 당(唐) 일본(日本)을 잇는 삼국의 무역을 주도하였다. 청해진을 주축으로 하는 동북아를 중심으로 남방과 페르시아 아라비아 등 서방 세계와의 중계무역을 통한 교역을 활발히 하였는데 그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던 배가 교관선이다.



교관선은, 청해진(바다를 지키는 신라 수군의 기지)을 주진(主鎭)으로 하고 당나라 산둥반도의 적산포(赤山浦)와 일본의 박다진(博多津=하까다)을 무역 근거지로 하여 황해와 동중국해 현해탄(玄海灘)과 일본열도 내해에 이르는 해역에 걸쳐 무역활동을 하였던 선박이다. 교관선은 우리나라의 전통선박인 평저선식 연안선(平底船式沿岸船)을 그 기본으로 하고 황해(黃海) 동중국해(東中國海)와 현해탄(玄海灘)을 항해(航海)하는데 필요한 항해 장비(航海裝備)와 의장 장비(艤裝裝備)를 더 추가하고 보강하여 명실공히 연안(沿岸)과 대양(大洋)항해에 있어서 왕자의 자리를 차지하였던 무역선이다.

교관선의 구조
교관선의 구조를 살펴보면, “멍에” 위에 파도막이“옥삼”을 더 올리고 이물머리에는 높은 파도를 헤쳐 나아갈 수 있도록 “이물 귓삼”을 더 높이 올렸으며 고물에는 전천후(全天候) 항해를 할 수 있는 “사공방(沙工房)”을 지었고 배의 행선방향을 조정하는 “치(?)”의 장치를 더욱 견고하게 하였다. 배의 중앙에는 “선실(船室=樓閣)”을 지어 귀한 승객이 이용하게 하였다.

교관선은 뒤에서 순풍(順風)이 불어 올 때에는 “베돛”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역풍(逆風)이나 측풍(側風)이 불 때에는 “대나무 자리돛”을 자유 자제로 조종(操縱)하여 항해를 하였다. 교관선은 평저선인 관계로 해서 배가 좌우 옆으로 출렁거리게 되는데 5번 삼판과 8번 삼판 위에 “덧삼”을 덧붙여 출렁거림을 줄였다. 그리고 배에 짐을 만재(滿載)하였을 때 좌우 옆으로 출렁거림을 줄이고 부력(浮力)을 더해 주기 위하여 “대나무 묶음”을 “멍에” 아래에 메어 달았다.

배의 고물의 왼쪽에는 “노”를 설치하여 “노”를 저어서 배를 운용할 수 있게 하였고 바른쪽에는 “쟁밑”을 설치하여 “쟁밑”을 저어서 배의 방향을 조종(操縱)할수 있게 하였다. 이물머리에는 “조풍돛”을 달아 바람의 방향을 보아 가면서 배의 행선 방향(行船方向)을 조종(操縱)할수 있게 하였다. 이물머리에는 “닻줄물레(호롱)”를 설치하였는데 물레살은 8개로서 우리나라 특유의 옛 방식이다.

바다에서 배를 묶어 두는 “닻”은 나무로 만들고 닻장에는 돌을 메어 달았다. 배의 이물과 고물에 각각 “풍향기”를 세워 바람의 세기와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이물돛대와 한판돛대 꼭대기에도 “풍향기”를 메어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