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1/5 모형은 8세기 중엽 당시 신라재상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석굴암이 세상에 알려진것은 1907년 일본인 우체부...
오대산 상원사 범종은 성덕대왕 신종(에밀레 종) 보다도 45년이나 먼저 만들어진 한국 유기명 범종(有記銘梵鍾)가운데 가장 오랜 금속문 기록을 지닌 한국 범종의 조형(祖型)입니다. 처음에 어떤 목적으로 주조(鑄造)되어 어느 절에 보관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안동의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안동 읍성의 누문(樓門)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조선조 예종1) 국명에 의하여 죽령을 넘겨 현 상원사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현재는 종구(鍾口) 일부에 작은 균열이 생겨 타종하지 못하고 모작품(模作品)을 만들어 상원사 종각에 안치하였습니다. 이제 상원사 범종의 원음은 애석하게도 들을 수 없지만 신라역사과학관에서는 그동안 관람료를 지불하시고 입장하신 후원가족 여러분의 정성에 힘입어 여기 이 장소에 실물크기의 복원제작을 성공 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타종 후 1초 이내에 사라지는 타음(打音)과 10초 전후까지 이어지는 진동(몸체 떨림)에 이어 3분까지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은은한 맥놀이(beat)현상을 되 살릴 수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면 신라인들의 하이테크 문화재로 주조된 상원사 범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무엇일까요?

조형상의 특징
종신(種身)의 최정상에 외국종에서는 볼수 없는 한 마리의 용(龍)이 커다란 원통(圓筒)을 짊어지고 뒷 다리를 힘차게 밀며 앞으로 전진하려는 활기찬 모습의 조형은 어떤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이 대나무 형상의 음통(음관)을 하늘로 향하는 소리의 확대 통로로, 또는 음향 필터 작용으로, 종 걸이의 지주역할 등으로 해석하는 연구가들도 있지만 미술사학자 황수영 박사께서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만파식적(萬波息笛=대나무 피리)과 문무대왕의 수증능에 얽힌 설화를 주목하여 신라종의 특색과 그 창조적 조형 의지를 삼국통일 초기의 풍토적 문화배경으로 연관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음향을 생각한 디자인 상의 특징
A·D 725년 종이 만들어 질 무렵의 신라 주종(鑄鍾) 기술자들은 오랫동안의 축적된 기술의 비법에 의하여 구리+주석+아연 (82% : 16% : 2%)의 합금이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소리의 주체적 요소이며 그 보조적 요건으로 음관(音管)의 크기, 당좌(撞座)의 위치, 유두(乳頭=돌기)의 크기, 명동(鳴洞=움림통)의 깊이와 종과의 떨어짐(거리)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들 보조적 요건들은 종 전체 두께와 크기에 따른 비례 관계의 유기적 수치로 은밀히 파악되고 있었으리라고 믿습니다. 이제 상원사 종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관찰해 보면 상대(윗띠)와 하대(아래띠)는 반달형 연주문 분할이 서로 비대칭일 뿐만아니라 종신의 둘레와도 비대칭 분할 구도로 두껍게 동여 매듯이 조여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시각적으로 매우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종의 설계자는 주악비천(奏樂飛天)의 부드러운 표현양식을 선택하여 긴장감의 완화를 시도한 듯 합니다. 특히 이들 각 문양들의 비대칭적 분할 구도야말로 맥놀이현상의 결정적 작용원인이 된다고 음향 연구가인 진용옥 교수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비대칭 없이 맥놀이 없다″는 표현은 한국 쇠북(범종) 분석의 한차원 높은 과학적 해석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주조상의 특징
주형틀(거푸집)은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야 용두(龍頭) 및 음관(音管) 뿐만아니라 주악비천 및 당좌, 그리고 상·하대의 섬세한 문양들까지도 완벽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그들은 무척 고민하고 연구를 거듭하여 마침내 종 전체를 밀랍형(蜜蠟形) 주조 공법으로 제작할 것을 결심하고 내외형 구조의 주형작업을 착수한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