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1/5 모형은 8세기 중엽 당시 신라재상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석굴암이 세상에 알려진것은 1907년 일본인 우체부...


석굴암으로 향한 종착지에 닿으면 생명수처럼 맑고 깨끗한 샘 하나가 우리를 반긴다. 우리는 이름하여 감로수라 부른다. 1913년도에 일본인들은 석굴암을 해체하고 다시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그 때에 굴의 후실 중심부에 자리잡은 11면관음보살 바로 뒷편의 암반으로 부터 용출하는 샘을 두 곳에서 발견했다. 이 샘이 경덕왕대의 김대성이 석굴암을 창건 할 때부터 있어 왔다면 이들은 물이 용출하는 이 암반수 위에 석굴을 세우고도 석굴 동서로 돌 아나가는 배수구를 만들지 않은 이유는 물이 용출하는 5척(尺) 지하에 배수구를 만들지 않았다면 필연적으로 물은 굴원 밑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물은 암반을 타고 흘러 현재의 감로수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신라인의 지혜를 엿볼수 있는 곳이다. 즉 이고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은 여름철이 되면 항상 동해의 해풍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렇게되면 여름철이면 동해의 고온 다습한 공기가 석굴 내부로 들어오게 되므로 내부의 차가운 벽면과 만나게 되면 물방울을 맺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부의 많은 조상들은 심한 풍화작용을 이르키게 된다. 그래서 당시 신라인들은 이 곳 석굴암 바닥으로 항상 영상 9도에서 13도가 되는 차가운 샘물이 흐르게 하였다. 그렇게 되면 내부로 들어온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더 차가운 바닥에 습기를 빼앗겨 버리고 내부 벽면은 항상 건조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장치로서 당시 신라인들은 약 1200년 동안을 습기로부터 무사히 석굴암을 보존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