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1/5 모형은 8세기 중엽 당시 신라재상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석굴암이 세상에 알려진것은 1907년 일본인 우체부...
경주 남산의 감실 좌불
보물-198호
좌상 높이-130㎝
감실 깊이-90㎝
암석 높이-230㎝
암석폭-350㎝



석굴암의 원초적 형태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이 작은 석굴의 작은 불상은 현재 남아 있는 우리나라 석불 중에서 최초의 감실 좌상이며, 최초의 선정인상(禪定印像)이다. 선정인 수인이기 때문에 석가여래로 볼 수 있는 이 좌상은 6세기 후반-7세기 초반에 처음 나타나는 경주 남산의 석불중 첫째 시기의 조각품이다. 중국의 북위(北魏) 불상의 영향을 받은 이러한 선정인상은 고구려와 백제에는 6세기경에 각각 금동불이나 납석으로 제작된 것이 남아 있다.

마치 어머니의 품같이 따뜻하고 포근한 감실속에 순진무구한 동심(童心)의 세계를 상징하듯 큰 눈망울에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다. 실로 보는 이에게 다양한 정감과 감탄을 자아내는 이 불상을 일컬어 어떤이는 “마음씨 좋은 하숙집 아주머니” 같다고 하고, “이 분은 신라의 여왕 곧 선덕여왕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라고도 한다. 요즈음은 고즈넉한 달밤에 촛불을 들고 촛불을 비춰봐야 향기나는 선덕여왕의 아름다운 미소를 느낄수 있다고 하니 경주 남산의 불상중 가장 사랑받는 석불로 변한 것이다.

경주 남산의 삼화령 미륵삼존석굴
연도 길이-8척
본존 미륵불-160㎝
연도폭-4척
좌협시보살-100㎝
현실 길이-7척×4
우협시보살-90.5㎝



경주 남산의 장창곡에는 석굴암보다 약 100여년 앞선 시기에 고분을 연상시키는 인조 석굴이 있었다. 언제,왜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이 곳을 찾으면 석굴의 흔적을 알리는 돌 몇 개가 지상에 남아 있을뿐 석굴은 완벽하게 자취를 감춰 애석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1940년(일정기)에 간행된 『경주남산의 불적』의 사진을 보면 천정 개석들은 없지만 인공적으로 측벽을 쌓았던 석재가 많이 보인다.

연도의 기둥돌로 추측되는 석재 뒤편 현실속에는 의자에 앉은 미륵불(椅像)의 모습이 원형을 유지한채 남아 있어 충격을 준다. 책의 설명에 의하면 속칭 애기보살이라 불리는 작은 동자(童子)보살 2구는 산 아래 나무꾼 소년들이 몰래 마을로 옮겼다고 한다. 후일(1925년 4월)에 수습하여 본존상과 함께 경주박물관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의 불상들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생의사(生義寺)의 돌미륵으로 추정하여 흔히 삼화령 미륵 삼존불이라고 부른다.(선덕여왕 13년, 644년) 만약 삼화령 미륵불이 확실하다면 약 100여년이 지난 경덕왕 때 찬기파랑가와 안민가를 지은 충담(忠談) 스님이 3월3일과 9월9일에 차를 공양했다는 그 곳이 바로 이 은밀하고 비밀스런 공간이 된다. 따라서 미륵하생(彌勒下生)의 상대적 주인공이 누구(轉輪聖王)였는지도 그는 분명 알고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