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1/5 모형은 8세기 중엽 당시 신라재상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석굴암이 세상에 알려진것은 1907년 일본인 우체부...
신라인들 침대 썼다  
신라인들은 온돌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침대를 썼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0일 경주 현대호텔에서 열린 제28회 신라문화제 학술회의에서 양정석 수원대 교수는 신라인의 신분별 각종 건축 규제 사항을 담고 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雜志) 2의 옥사(屋舍) 관련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신라인들은 온돌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침대를 썼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왕경인의 주거공간:삼국사기 옥사 조(條)와 왕경(王京) 유적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왕족을 제외한 신라의 최고 신분인 진골(眞骨)과 그 다음 신분인 육두품(六頭品) 계층에 대한 건축 관련 규제 항목에서 상(床), 즉 침상에 관한 기술이 보이는데 진골은 침상을 대모나 침향목으로 꾸미지 못하며(床不飾玳瑁침香), 육두품은 대모나 자단, 침향, 회양목을 침상 장식으로 쓰지 못했다(床不得飾玳瑁紫檀침香黃楊)는 것.

그는 “당시 신라인들은 방바닥에 직접 앉거나 그곳에서 잠자지 않았으며 침대나 기대를 사용했으며 건물 바닥에는 널마루나 온돌 등을 깔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분별 건축 규제 사항을 담은 삼국사기 옥사 관련 기록이 신라 흥덕왕 9년(834)에 공포된 법령에 기초를 둔 것이지만 사실상 부분적인 실행에 그치거나 실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흥덕왕조에 지진이 일어나고, 혹독한 가뭄과 연이은 기근, 도적과 전염병의 창궐 등과 같은 국가적 위기 국면에 직면해 검소함을 강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때마침 당나라 문종(文宗) 태화(太和) 6년(831)에 발효된 검박령(儉朴令)을 모델로 삼아 들고 나온 카드가 각 신분별 옥사나 거기(車騎. 수레), 기용(器用) 등의 사치 규제 법률이었다는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실 이은석 학예연구관은 “황룡사지는 물론 그 바로 인접 지역에서 발굴된 대규모 왕경 유적, 동궁(東宮)이 있던 월성 안압지 등지에서도 온돌은 없었으며 온돌의 보편화는 곧 산림 황폐화 문제와 직결되는데 그 시점은 대체로 18세기”라고 말했다.

:: 출처 - 경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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